코다의 시각과 목소리를 담은 아홉 번째 #코다시선은 경찰관 코다 강수정의 이야기입니다.
코다코리아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코다들이 있는데요. 행사를 마치고 무거운 박스를 날라야 했을 때, 경찰관으로 일하는 강수정님과 소방관으로 일하는 송OO 회원님이 뭐든 말만 하라며 번쩍번쩍 박스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 정말 이것은 다른 직업이구나,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답니다. 😲
"날씨가 추워져서 많이들 다치는 기간이니까 조심하세요"하고 강수정 경찰관님으로부터 연락이 올 때면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 사이에서 코다로서 어떤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코다 경찰관으로서의 경험과 애로사항을 어떻게 모두와 함께 뛰어넘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글 말미에는 강수정 경찰관이 직접 만든 PPT 자료와 영상도 첨부되어 있어요. (매우 귀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코다 정체성을 빛내며 일하는, 사회의 빈틈을 멋지게 메워가는 코다의 이야기, 읽어보시지요!
평범하고 싶었다. 그런데 평범한 게 뭐지?
- 강수정 (경찰관, 코다코리아 회원)
한때 속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라는 말을 되뇌던 때가 있었다. 나도 평범하게 생일날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평범하게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평범하게 등 뒤에서 “엄마”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평범하다는 게 뭐지? 어쩌면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제일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른 이들의 평범함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코다만의 방식으로, 우리 가족만의 방식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뼉을 치며 생일 축하한다고 수어로 나름의 리듬을 붙여 노래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어 얼굴을 마주하고 시간은 걸리지만 엄마의 등 뒤에서 간절한 손짓으로 엄마를 불렀다.
이것이 우리만의 방식이라는 걸 깨닫고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손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얼마나 손짓해야 엄마가 돌아볼까를 세어 보는 게 재밌었다.
이렇게 말하니 다름이라고 하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지만 그래도 비장애인이 누리는 것을 농인 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누렸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농인의 경우 소리를 들을 수 없어 통화로 본인 확인을 할 수 없어 연차를 써가며 주민센터나 은행에 방문해야 하는 것이 억울하고, 장애로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 억울하고, 도어락의 방전 알람이 소리로만 되어 있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있는 상황이 여전히 억울하다. 농인과 그의 가족들이 소외받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꿈꾸며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경찰관은 대민업무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근무를 하다 농인을 마주친다면 어떨지, 수어를 모르는 동료 직원이 농인을 만나면 어떻게 응대하면 좋을지 생각하곤 한다. 한 번은 직원들이 농인을 만났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나의 농인 부모님이 실제로 경찰관을 만났을 때의 애로사항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서 내부 게시판에 제출한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그 자료가 채택되어 메인 게시판에 걸려 전국 경찰관들이 볼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과 쪽지를 받기도 하였다.
다른 코다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농인들이 수어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어라, 혹시 농인인가’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작년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한 부부가 길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내 앞을 지나가는데 어쩐지 농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두 분이 수어로 말씀을 나누시기에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한지 여쭈어 보았다. 부부께서는 갑자기 내가 수어를 하는 걸 보고 당황하셨던 것 같지만 이내 도움을 요청하셨다. 근무지 주변에서 집회가 있어 오셨다는 걸 알고 길을 안내해 드렸다. 이후 또 다른 농인들이 수어로 집회 장소를 찾고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길을 안내해드렸다. 어디서 수어를 배웠느냐고 묻기에 코다라고 소개를 하니 수어를 잘한다며 칭찬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비유하자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어설프더라도 한국말을 할 때를 보면 기분 좋고 반갑고 그런데, 내가 그날 마주했던 농인들도 그런 기분을 느끼셨을까?
국회의사당역 주변에는 공갈호떡과 국화빵을 파는 농인이 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는데 사장님이 농인인 걸 알아차리고 수어로 주문을 했다. 사장님이 살짝 놀라며 수어를 할 줄 아냐기에 소개를 하였고, 그 이후로 직장동료와 종종 방문하여 인사도 드리고, 동료분도 수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엔 사장님이 수어로 내게 무슨 업무를 하는지 물었다. 또한 농인을 위한 전문 경찰관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요즘은 국회에 갈 일이 적어 뵙지 못한 지 꽤 되었는데 다음에 인사하러 가야겠다. 참고로 이곳 기름 없는 호떡이 정말 맛있다. 국회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보시길 바란다.
얼마 전 SNS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눈이 멀면 사물에게서 멀어지지만 귀가 멀면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과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글이다. 수어로 먼저 인사를 건넸을 때 반가워하던 농인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곧 인사이동이 다가온다. 어느 곳에서 업무를 맡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코다이자 경찰관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