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의 시각과 목소리를 담은 일곱 번째 #코다시선 은 농인과 코다를 위한 기도공동체인 가까이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는 목사이자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송정섭의 이야기입니다. 농인 부모와 함께 농교회를 다니며 자랐고 이후 청인 중심의 교회에 갔을 때 부모와 자신이 배제되는 경험을 했던 것을 통해 지금과 같은 농인과 코다를 위한 시공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지난 번에 보내드렸던 코다레터에서 가까이공동체 연대방문 소식을 싣기도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담당 목사의 글을 통해 직접 들어볼까요?
말보다 가까이 - 코다의 시선으로 시작한 공동체 이야기
- 송정섭 (가까이공동체 목사,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우리 집은 늘 고요했다. 손짓과 눈빛이 소리가 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체득했다. 그 단어를 몰랐던 어린 시절에도 언제나 세상과 고요함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다는 것을 감각하곤 했다. 농인 부모님과 청인 사회 사이, 수어와 말 사이, 침묵과 소음 사이에서 자라며 나는 말의 섬세함과 침묵의 깊이를 동시에 배웠다. 때로는 동정 어린 시선 앞에서 억지로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지만 그 경험마저도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형성하는 뿌리가 되었다.
내가 신앙을 처음 접했던 곳은 농인교회였다. 그곳의 찬양은 눈에 보이는 수어였고, 설교는 몸짓과 표정으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청인 중심의 교회에 가보니 부모님이 함께하실 수 없는 공간임을 금세 깨달았다. 찬양의 소리는 부모님께 가닿지 않았고 설교에는 자막도, 수어 통역도 없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함께 예배할 수 없는 걸까?”
“꼭 소리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단순히 예배의 방식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언어와 문화 때문에 누군가가 늘 배제되는 현실을 비추는 물음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삶에서 나는 말보다 깊은 신앙의 본을 배웠다. 어머니는 소리 없는 눈물의 기도를 하셨고 손끝으로 찬양하셨으며 삶으로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다. 그 모습은 종교적인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 속에서 신앙이 꼭 목소리로만 표현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배움들이 쌓여 가까이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은 농인과 코다, 수어 사용자, 그리고 청인이 함께 모여 삶을 나누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재정도 공간도 부족했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웠다. 그러나 작은 헌신과 만남들이 모여 길이 열렸다. 지금 가까이공동체에서 우리는 수어로 찬양하고 손으로 기도 드리며 설교는 입과 손으로 함께 전한다. 누구도 구경꾼이 되지 않고 모두가 예배자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서로를 돌본다.
코다로서 내가 배운 것은 언어의 차이가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있어도 그 차이가 반드시 장벽이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차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끄는 이유가 된다. 가까이공동체는 그걸 보여주려는 작은 실험실과도 같다. 우리는 언어가 달라도 표현 방식이 달라도 분명 서로 가까이 다가가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농인과 청인, 교회와 세상,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그 ‘사이’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이다. 가까이공동체가 그 다리를 놓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코다로 태어나 목회자의 길을 걷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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