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의 시각과 목소리를 담은 다섯 번째 #코다시선 은 최근 한국농인가족심리상담센터 를 개소한 진보겸 운영위원의 이야기입니다. 농인 부모의 나이듦, 돌봄, 농인과 코다의 역사 기록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함께 읽어보아요!
코다여, 부모의 역사를 기록하라
- 진보겸 (한국농인가족심리상담센터 대표, 코다코리아 운영위원)
둘째인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농인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 전에는 외조부모 댁에 맡겨져 자랐다.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 어린 코다는 언어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종종 친족의 집에 보내진다.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나는 수어를 잘할 줄 몰랐고 자주 쓰지도 않았다. 언니가 부모님의 입과 귀 역할을 했고 나는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고, 나는 작은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가족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나는 농사회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부모의 수족 역할을 해야 했던 언니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나를 입양한 작은아버지도 농인이었는데 그와는 필담을 사용했다. 작은아버지는 내가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언젠가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집 안에 어머니가 있는데도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기도 했다. 코다들이 흔히 경험하는 일 중 하나인데,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고 안에서 문을 잠그면 속수무책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고 농사회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나를 늘 손님처럼 대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들어본 적도, 티격태격해본 적도 없었다. 그것이 내가 수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수어를 못하는 혈족보다 농인이나 수어를 할 줄 아는 청인을 더 믿고 친밀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어머니가 수어 못하는 딸을 얼마나 답답해 했는지도 말이다.
독성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죽게하는 뇌질환. 이는 치매 (알츠하이머)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뇌에도 유전적인 이유로 이런 단백질이 축적되고 있을테다. 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를 둘러싼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부터다. 어머니는 사기꾼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맹신하다 뒤통수를 맞았다. 같은 농인에게 돈을 주고도 돌려 받지 못한 이유가 퇴화된 뇌 기능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다수의 농인들은 저소득 계층으로, 돈을 벌고 싶어도 뾰족한 방법도 없고 금융관련 지식도 부족하다. 금전적인 결핍감을 이용한 사기단의 미끼에 쉽게 낚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 채 쉬쉬하며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며 괴로워하는 농인이 많다.
나이가 들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어제 한 약속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여 재생하는 단기 기억의 어려움이 커진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장기 기억도 언젠가는 사그라드는 때가 올 테다.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와 함께 진료를 받으면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농인을 대상으로 한 심리검사의 한계를 보았다. 의사는 PET-CT나 MRI 결과가 있어야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고가의 검사비 지원을 받은 후에야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약물치료 외에는 중증 치매 농인 노인을 위해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청인 중증 치매 노인을 위한 전문시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농인을 위한 전문시설은 부재하다. 향후 가정에서 어머니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농인 어르신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것은 나를 비통하게 만든다.
농인 여성으로서 역사의 질곡을 헤쳐오신 어머니는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나의 나이 오십이 넘어서다.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 무렵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부모의 역사가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인지기능이 더 쇠퇴하기 전에 기억의 뭉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글을 쓰지 못하기에 어머니가 기억하는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녹화했다. 글쓰기가 가능한 작은아버지에게는 살아계실 때 인생 회고록을 부탁드렸는데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역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특히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의 이야기가 작은아버지의 글에 부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는 4남매 중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농인이고, 어머니는 7남매 중에 오빠 한 명이 농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농인 가족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왔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어를 더 잘했더라면 일찍부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두었을 테다. 이에 관심이 있는 코다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역사를 문자든 영상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걸 권한다.
젊었을 때는 나의 뿌리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며 살기에도 일상이 버거웠다.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부모의 인생으로부터 대물림된 것들이 무엇인지를 헤아려보게 된다. 노화와 죽음이 현실이 되고 체감되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귀와 입 역할을 했던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둘째 딸로서 남은 부모를 돌보게 되었다. 이는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 길에는 나의 노화도 동반된다. 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한다. 이는 건강한 발달단계의 과정인데, 부모가 스스로를 돌보기 힘든 시기가 오면 돌봄의 몫은 자녀에게 돌아온다. 이 책임을 외면하거나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 자녀도 있다.
지금 나는 농인 어머니를 돌본다.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머니가 내 곁에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어머니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도 어머니가 이 땅에 계시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 조건 없이 사랑으로 길러주신 것처럼 나도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돌볼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가족에게 유대감이 중요한 것처럼 장애인과 그의 가족에게도 정서적인 유대감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 유무를 떠나서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조건이 있을까? 물론 많은 이들이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렇지만 가족은 사랑의 원천 또한 될 수 있다. 장애인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코다로서 부모의 노년을 더욱 더 다각적이고 섬세하게 살피고 싶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노인이 된 농인 어머니를 바라본다.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노인 농인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생각한다. 국가와 사회의 공적 돌봄의 사각지대다. 이는 나이 들어가는 코다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이자 상황이다.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 체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